Q. 본인이 생각하는 ‘어른 됨’이란 무엇인가요?
🌵: 질문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 서로의 고통을 인지하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위해 질문할 수 있는 사람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지금 굴러가는 정상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고, 자기의 발언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불행이나 비극을 통과하는 방법을 아는 것을 가리킨다. 불행이나 비극을 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기에 맞서다가 파멸하지도 않은 채. 내 안에 맴도는 사건들을 잘 처리하고 대처함으로써 회복 탄력성을 갖춘 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것이 곧 어른-되기의 과정이자 어른 됨의 요건 아닐까. 그리고 이와 같은 불행이나 비극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겪고 있는 보편적인 차원의 것임을 인지하는 것. 그렇기에 나와 세상의 접면에 맞닿은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슬픔이 있고, 또 그것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헤아리는 일.
🎉 :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el less Joy.”
지난 6월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2> 중반부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성장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것. 나는 그 장면에서 픽사의 술수에 제대로 걸려들고는 영화관 한복판에서 남이 들을까 조용히 훌쩍였다. 언젠가 놀이터 한편에 있는 모래 한 움큼만 쥐어도 나를 가득 채웠던 어떤 것이 이제는 내 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구함이 없이, 단순하게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웠다. 달과 별은 아름다웠다. 시내와 강 언덕도 아름다웠고, 숲과 바위도, 산양(山羊)과 갑충(甲蟲)도, 꽃과 나비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각성되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렇게 의심 없이 세상을 걸어간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한편으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차경아 역)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주인공인 사문 싯다르타가 그 어떤 배움과 스승도 마다하고 홀로 수행길에 나서면서 깨닫는 것들 중 하나이다.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며 사람은 지혜와 기술을 얻는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곧 단순함을 잃고 복잡함에 경도되는 것이며, 일상에서 호기심과 경이로움보다는 익숙함과 권태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언제나 성숙을 좇는 것이 내 스스로에게 좋은 일일까? 어려운 고민이다.
🍉 : 다시 일어나는 것
지금의 내 나이가 적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풍파를 다 겪었다고 할 만큼 나이를 먹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이거면 끝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고비고비들을 하나씩 넘어가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다. '이정도면 저 힘들만큼 힘들지 않았을까요?'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새 돌아보면 다른 고비를 넘고 있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것. 일어나 한걸음씩 다시 나아가는 것. 넘어져도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가는 게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떤 이를 보고 ‘어른스럽다’고 느낄 때를 떠올려본다. 타인의 기분, 감정 등을 고려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자신의 주관을 배제한 채, 행하는 무조건적인 배려는 아니다. 다만 타인의 표정과 말투를 살피며 감정들을 읽어내는 것,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축적되는 경험들을 통해 복합하고 다층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보다 복잡한 경험이 다양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쌓이며 타인의 감정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인생은 혼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으나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상이기도 하다. 나를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이지만 타인의 감정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람, 그런 어른이 곁에 있다면 커다란 슬픔을 겪더라도 가끔은 기댈 수 있을 것이다.
🕯️: 단순히 스무 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어른이란 칭호를 얻을 수는 없음을 절감한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며 어떤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고민한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인정할 수 있다. 또, 자기의 고달픔에 침잠되지 않고, 비슷한 고달픔에 공감할 수 있다. 이 능력들을 충족함이 곧 내가 생각하는 ‘어른 됨’이겠다. 늘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도,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 : '어른 됨'은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의 싫은 부분, 타인의 슬픔, 사회의 부조리함이나 그럼에도 세상은 자연의 법칙대로 굴러간다는 것 등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보다 내가 아닌 것들이 가득 차게 된다. 그때가 가장 주의해야 할 순간이다. '어른 됨'이 '어른'으로 완결 나면 무게감이 생기지만 동시에 둔해지기 때문이다.
🎅 : 현실과 타협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의 대상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그것이 가정이 될 수도, 부모가 될 수도, 스스로의 삶일 수도 있다. 어른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긋는 사람 즉, 포기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공부, 취업이라는 무형의 목표에 매달리지 않고 가시적인 희망사항을 품게 된다. 그리고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게 된다. 가령 높은 연봉, 자식의 성공 이런 것들 말이다. 본인 어릴 때만 해도 학급의 장래희망칸은 다채로웠다. 과학자, 마술사, 의사, 교사, 미용사. 심지어는 팔뚝만한 직업소개책도 있었다. 그런데 약 15년이 흐른 현재, 대학생들은 대형 유통사 물류 센터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소기업의 인턴이라고 합격하기를 기도한다. 초등학교 1학년 누구도 회사원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린 현실과 타협해 적당한 직업을 찾아낸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