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작별 인사에 대한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나는 어떤 태도로 작별 인사를 했나요?
🌵 : 지난 12월 정말 갑작스럽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투병 생활이 길어졌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언젠간 찾아올 죽음을 염두하고는 있었지만 진짜 마주한 죽음은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막상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당혹스럽기도 했고 믿기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장례 절차 중 입관할 때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때 나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이 인사가 정말 마지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젠간 준비가 된다면 작별 인사를 건넬 것이다. 온전히 작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난 뒤.
🎉 : 외할머니께서 맡아 키웠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를 애틋하게 대하시는 외할머니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할머니 앞에서 쭈뼛대기 일쑤였다.
외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은 내가 19살의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중환자실에서 만난 외할머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몰래 병원 화장실에 들어갔고, 누나가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장례식 이틀차가 끝난 새벽이었을까, 동이 트고 아침이 오면 발인이 시작될 것이었다. 모두가 잠든 와중에 나는 왜일까 잠들지 못하고 있었고, 선잠에 들었다 일어난 엄마가 내 곁으로 왔다. 내 옆에 앉아 한참이나 함께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있던 엄마가 나지막이 “엄마 안녕”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번엔 화장실로 숨진 않았다. 그저 그 곁에 쭉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지난 작별들이 아쉽다. 작별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 :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떠나보낸다는 의미의 ‘작별 인사’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문 뒤에 서로 등을 기댄 것처럼, 이 삶의 여분은 남아 있지만 관계는 끝에 다다랐을 때 하는 ‘작별 인사’는 해 본 적 있다. 대개는 작별 인사를 고한 적도 없이 점이 소실되듯이 사라졌지만. 내가 먼저 관계를 끝내고 싶을 때의 작별 인사는 최대한 나의 감정과 끝의 이유를 정확히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잘 지내’라는 말에 수사를 덧붙였다. 그때는 관계가 완전히 끝이 난다는 아쉬움과 씁쓸함보다는 허탄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너무 상처가 되지는 않을 말을 골라서, 그러나 더 이상 관계가 존속되지 않게끔 명확한 선을 긋는 태도로. 반대의 처지에 놓였을 때는 이와 비슷한 태도에서 아쉬움과 씁쓸함, 분노와 증오의 감정만 뒤섞였던 것 같다. 그것이 표면 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 : 나는 ‘마지막’에 약한 편이라 ‘이것이 마지막임을 아는’ 작별 인사에서는 항상 눈물을 쏟았다. 시간이 흘러서, 혹은 각자의 삶이 바빠져서 보지 않게 되는 길고 얇게 늘어진 인연들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충격적인 ‘마지막’이 감당하기 힘들다. 연인과의 마지막이라든지, 해외 계절학기의 마지막이라든지, 해외봉사 학교에서의 마지막이라든지..
👅 : 작별인사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안녕을 빌어주는 일이다. 내가 상대를 아끼는 만큼 온 마음을 들여서, 아주 정성껏, 사활을 걸고 멋진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작별이라는 건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다. 그럼 나는 준비했던 모든 말을 꺼내두지 못하고 그저 잘 가라고, 어버버 하며 (최악의 태도로) 보내준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진정한 작별인사가 시작되는 것 같다. 준비했던 말들을 혼자 곱씹으면서 밖으로 꺼내 정리한다.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이 끝나면 진정한 작별인사가 마무리된다.
📌 : 얼마 전 2년간 산 첫 자취방에서 이사를 했습니다. 짐을 싣고 가는 차에서 아빠가 "집한테 인사는 했나? 잘 있으라고?" 이렇게 물어보시더군요. 평소 무뚝뚝한 편이셔서 괜히 장난스럽게 아빠는 차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유형의 사람이냐, 받아쳤지만 어쩐지 그 질문이 뜨뜻미지근하게 제 맘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편이 알맞을 것 같습니다. 유년을 보낸 집에도, 적절하게 미워한 친할머니의 장례식,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없게 하는 관계, 정만 들지는 않은 학교 등. 그 모든 걸 미온적인 태도로 보내주고 나면 일상에 종종 그들의 기억이 찾아옵니다. 보내주지 않았으니 떠나도 여기 있는 것처럼. 건강한 태도라고는 생각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의도한 미온적임이라기 보단 어쩔 줄 모르고 흘려보내며 사는 미숙함인 것 같기도 합니다.
🕯️ : 대개의 작별 인사는 곧 기약이다. 오늘 즐거웠어, 조심히 들어가고, 또 보자, 그래. 누구와 무엇과 만나든 상대와의 시간이 꽤 즐겁게 보낼 만했다면 늘 여지를 남겨둔다. 의식적으로 덧붙인다. 다시 만나자, 하고. 그러나 영영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여지 대신 상대가 이뤄줬으면 하는 소망을 내뱉는다. 앞으로 잘 되길 바라, 따위의 말이다. 그럼, 상대와 만났던 ‘나’의 존재는 필요 없게 된다. 소망은 나중을 위한 것이고, 나중에서 나를 없앤다. 그렇게 꽉 닫힌 작별을 시도한다. 미래에도 상대와 함께 있고 싶은지의 여부는 작별 인사의 문구와 태도를 결정하고는 한다.
☔ : 다수의 작별이 그렇듯 매정하게도 작별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으며 작별 인사의 수신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어떤 태도를 정립하기도 전에 사회가 정해준 작별인사의 절차를 수행했고, 모든 절차를 끝낸 후에야 비로소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난다. 원망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인사를 들으셨을지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잠깐의 이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사용하던 공간에 여전히 내가 있고, 함께 쓰던 물건을 내가 사용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늘 함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곁에 늘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죽음이란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던 배우의 수상소감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늘 어딘가에서 어떤 존재 양식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환상적인 믿음은 생각보다 꽤나 ‘작별’이 가져오는 아픔과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