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10 형태소 페이퍼 15호
의미를 갖춘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
행간 사이에 오래 머물며 마주한 생각을 나눌 예정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분들 누구나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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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다시 피워낸 꽃들과 인사는 하셨나요?
안녕하세요. 4월의 자립형태소, 야호🎉입니다.
제가 자립형태소로서 페이퍼로 인사드렸던 것이 어느새 지난 9월입니다.
그 사이에 제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추위가 한풀 꺾였지만, 날리는 눈발을 견디고 섰던 그 마음은 계속 가지고 살아가자.
그런 다짐으로 저는 4월을 맞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시도를 참 좋아합니다.
저번엔 에세이를 골랐었죠, 이번엔 ‘그림책’을 들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색다른 책을 만났던 형태소의 이야기를 담아
이번에도 희망차게, 형태소 페이퍼 15호를 보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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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친절을 베풀며 용기 있게 살아가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기 바랍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도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_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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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과 온기를 믿지 못할 정도로 지쳤던 순간이 있나요? 당연하게 생각하고, 믿고 있었던 가치들을 의심해본 적 있나요? 혼란과 불안 속에서 거짓과 폭력은 때로 진실과 필요의 이름을 얻기도 합니다. 허무에 빠지거나 그저 이익만 좇으면 편해지는 것들이 많고, 선함을 택하는 것은 늘 어렵다는 것이 삶의 야속한 부분입니다.
수없이 흔들리던 일상 속에서 만난 이 책은
제게 회복의 계기, 다시금 확신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형태소에게 이 책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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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네 존재를 다루는 그림책입니다. 소년은 두더지를 만나고, 여우를 만나며, 말도 만납니다. 어디론가 향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지나온 곳을 돌아보고, 때로 변화합니다. 두려움, 호기심, 경계심, … 우리는 그들이 서로의 감정, 서로가 찾으려는 것들을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이 그림책은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맥커시의 인스타그램 페이지(@charliemackesy)에서 비롯되었어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나온 몇 개의 아이디어가 표현된 일러스트들을 업로드했더니, 그 그림들을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졌습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이야기는 이를 계기로 2019년 영국에서 출판되었고, 2022년 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2023년 영국 BAFTA(제76회)와 미국 아카데미(제95회)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습니다.
찰리는 “이 책은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누구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소년과 동물들의 이야기는 주로 우정과 친절함, 용기, 아름다움 등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그 가치들은 정말로 여덟 살에게나, 여든 살에게나 변함 없이 소중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소년, 두더지, 여우, 말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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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야 “ 두더지가 말했습니다.
“우린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겐 지금 바로 친절할 수가 있어.”
두더지가 말했어요.
_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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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제시하는 ‘최고의 친절’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친절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때로 두려움과 추위를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사실 우리가 가장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 강인하지 못하고, 멈춰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나 자신을 자꾸만 다그치죠.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에게 이 책은 확실한 온기로 다가옵니다. 그림과 글에는 진심을 담은 위로가 가득합니다. 사람들의 요청이 이해가 갔습니다. ‘치료 목적’으로 읽히기에 제격인 책이었죠.
결론적으로 이 책을 통해 다시 일이서 힘을 얻은 저는 이 책이 지금 뿐만 아니라, 제가 온기를 잊을 때마다 다시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홀로 설원에서 목적지를 잃은 소년에게 인사를 건네는 두더지와 같이, 내가 추위와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면 불현듯 다시 힘을 빌릴 수 있는 책이었으면 했죠. 그런 순간이란 언제일까, 삶의 어느 순간에 나는 다시 이 온기를 기억해야 할까. 그것이 문득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책을 읽은 형태소에게 ‘이 책을 다시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순간’을 물었습니다. 형태소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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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약 이 책을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면, 어느 시절의 나에게 주고 싶나요? 이미 지나간 과거여도 좋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여도 좋습니다!
🎉 : 나는 무슨 계절처럼 주기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기간을 갖는데, 주로 어떤 일이 끝나고 나면 아쉬움에 사무치고 번아웃에 시달리느라 나오는 결과이다. 늘 감정이 예민하고 생각은 많아서 내가 내렸던 선택과 걸어온 길을 수백 수천 각도로 잘라서 분해하고 확대해석하고 혼자 자책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외면해두는 것이 자신에 대한 친절이고, 문제와 마주할 용기이며, 타인에 청하는 도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놈의 예민함에 파묻혀 있는 모든 나 중에서 정말 도움이 필요할 나에게, 어쩌면 직장에 다니고 있는 중이거나 어쩌면 병과 싸우고 있을 어느 한 순간의 나에게 다시 이 책을 읽히고 싶다. 나늘 늘 까먹는 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글이라도 한 번 썼다면, 그때의 나는 이 책이 문득 떠오를 수도 있겠다. 그 순간의 내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 되지 않을까.
🌵 : 이 책을 고등학교 시절의 내게 선물해주고 싶다. 종종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대화를 할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을 한다. 스스로를 너무도 괴롭혔던 것 같아서.. 매번 잠이 들 때마다 편한 적이 없었다. 사실 그때는 대학! 입시!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던 시기라 지금보다 덜 힘들텐데도 ㅋㅋ ㅠㅠ.. 뭐가 그렇게 괴로웠을까 싶기도 하지만.. 19살의 나는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자존심을 부린 적이 정말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내가 나를 조금 더 아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 10년 뒤의 나에게 주고 싶다. 어린 친구를 옆에 앉혀두고 같이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기보다는 미래의 내가 다른 어린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다. 물론, 그때의 나에게도 이 책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 10년 뒤의 나에게, 그리고 그 옆에 있을 어린 친구에게 주고싶다.
📌 : 나는 어릴 적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었다. 유치원생 때는 그 옆에 꽂힌 위인전 전집,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그림책보다는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 시각장애인 점자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낭독 대본으로 각색하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동화를 3편 정도 자세히 읽게 된 거다. 내용뿐만 아니라 삽화까지 대사로 표현해야 해서 일종의 그림 번역이라고 할 만한 행위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도 즐겁고 마음도 풀어지게 되었다. 따뜻한 그림을 찬찬히 읽는 것에는 분명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어릴 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7살 무렵의 내게 이 책을 쥐어주고 싶다. 얘, 이걸 읽어봐. 그렇지만 나는 고집이 무척 센 아이였어서 아마 분명히 이렇게 말할 거다. 난 위인전이 더 좋은데?
음,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의 나는 안 바뀐다. 그러니까 봉사활동이 끝나고 한참 뒤, 그런 일도 했었지-라고 생각할 즈음의 나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너무 딱딱한 글만 읽어서 딱딱하게 머리가 굳어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이 책을 한 번 다시 보라고. 어쩌면 세상을 잘 살아내는 힘은 그림 속에 있을지도 몰라, 라고 전해주고 싶다.
🕯️ : 책 속 대부분의 구절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건 그 말이 불변의 진리여서도 아니고, 책 자체가 설득력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가 그렇게 배웠거나 생각해 왔던 것을 재확인한 것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책까지 냈으며 그 책을 산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대학교를 졸업하기로 마음먹었을 나에게 주고 싶다. 그때라면 졸업 후의 진로를 정했을 테니 어떤 확신을 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긴장도 했을 테다. 조금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내가 믿는 가치들을 다시 바라보면, 성큼성큼 나아갈 용기를 품을 수 있을 듯하다.
☂️ : 미래에 다가올, 유난히 어둡다 느껴질 나의 밤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일 또는 사람에 지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소년과 두더지, 여우와 말이 건네는 말들을 되새기고 싶다. 사랑을 나누고 또 받기 위하여. 곁에 있는 누군가와 서로 기대어 많은 밤들을 이겨내기 위하여.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있어”라며 건네는 말의 위로가 어두운 밤을 보내는 미래의 나에게 도달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역시 세상에는 미움보다 사랑이 많다고 다시 한 번 믿을 수 있을 것이다.
🍥 :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제게 선물해주고 싶어요. 그땐 좀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까요? 조금 눈물을 흘렸을까요? 소년처럼 근심이 많았던 시기에 다정한 위로가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딱히 도움이 안되었을지도 ㅎㅎ
🎅 : 사실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따로 있다. 책의 내용과는 큰 관련 없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그림을 밟고 다녔네요. 수습한다고는 했는데.”라는 작가의 말이다.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을 때 글을 쓴다. 그리고 짧은 에세이의 마지막에는 항상 ‘10년 뒤의 내겐 그저 귀여운 불안함이었기를’. 계획에 없던 강아지의 발자국은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계획대로 살고 싶은 24살의 나의 모습이 34살의 나에겐 그저 강아지 발자국 정도의 흔적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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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소가 이 책을 만나고 싶은 순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이를 통해 서로의 속에 있는 두려움이나 아픔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읽은 형태소의 한줄평은 다음과 같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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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 어떤 순간에나 필요한 이야기 🎉 : 집은 잃은 소년들에게 두더지처럼 찾아오는 이야기 🍉 : 어떤 위로는 한장의 그림이면 충분하다 📌 : 우리가 서로의 집이 될 수 있기를 🕯️ : 품어왔던 걸 꺼내 보일 때 ☔ :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한 조각의 케이크 🍥 :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이들에게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말해주는 다정한 동화 🎅 : 때론 나를 믿는 너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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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기도 쉬운 4월, 그 틈새에 잠깐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림책인 만큼, 이 책에는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든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형태소의 소감으로만 이 책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꼭 이 책을 직접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책인 만큼, 아주 부담 없이 후루룩 읽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읽고 난 후에 떠오르는 것들을 모두 나누려면, 우리는 아주 긴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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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형태소가 소개한 책이 궁금해졌다면,
함께 읽으며 이 질문들에도 답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 책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과 글귀는 어느 부분이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좋은 글귀와 그림이 서로 다른 부분에 있다면 따로 설명해주세요!)
- 소년, 두더지, 여우, 말 중에서 가장 자신과 잘 통할 것 같은 친구를 하나만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 만약 이 책을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면, 어느 시절의 나에게 주고 싶나요? 이미 지나간 과거여도 좋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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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소의 열다섯 번째 페이퍼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태소 페이퍼>는
매달 둘째주, 넷째주 목요일에 찾아옵니다.
🙌다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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