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4 형태소 페이퍼 16호
의미를 갖춘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
행간 사이에 오래 머물며 마주한 생각을 나눌 예정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분들 누구나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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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름이 보인다고 말해도 좋을 날들이네요!
4월의 자립형태소 야호🎉입니다.
거리의 색채도, 옷장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것이 계절이지만, 그 초입이 항상 즐거운 것은 어째서일까요?
반복 속에서도 늘 크고 작은 새로움을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으로 사는 일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저의 일상 속 작은 새로움 중 하나가 바로 책이고,
그 책을 매개로 발견의 즐거움을 나누는 공동체인 형태소 또한 그렇습니다.
오늘 보내 드리는 페이퍼가 여러분께 그런 새로움이 될 수 있을까요?
어깨를 으쓱대며 형태소 페이퍼 16호를 보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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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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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이번 4월의 책이었습니다. 한 번 펼쳐 보셨나요? 책을 대하는 우리들 보통의 습관처럼 대부분의 분들께서 이 책과의 첫 만남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읽는 것으로 마치셨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림책이니, 가볍게 성공하셨겠네요! 멋지고 따뜻한 책이었죠? 그렇다면, 이 책을 혹시 다시 한 번 펼쳐 보신 적은 있나요? 그렇다면 그 때에도 이 책을 첫 장부터 다시 읽으셨나요?
이 책의 자립형태소를 맡은 기간 동안, 저는 이 책을 책상 한 켠에 늘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심심하거나 심란한 순간이 찾아오면 종종 이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첫 장부터가 아니고, 아무 페이지나요! 그러자면 이 책은 제가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제게 몇 번이나 ‘반복 속 새로움’의 마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분명 똑같은 책이고 이미 읽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칠 때 제 마음의 상태, 주변의 상황, 우연히 펼친 페이지 속 내용에 따라 매번 제 속내에서는 다른 작용이 펼쳐졌죠.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캐릭터의 매력, 얻을 수 있는 정보, ⋯. 각각의 책이 가진 강점과 매력은 정말 다양합니다. 이 책이 가진 아이덴티티는 그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사실 작가인 찰리 맥커시는 책의 초입부터 “저는 당신이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은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의 의도인 바로 그 점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진가’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흐름과 맥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핵심 메시지는 책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거기에는 친구들이 있고, 우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위로가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동화, 어떤 면에서는 그림책, 어떤 면에서는 단상집, 또 어떤 면에서는 시집 같기도 한 다채로운 읽기 경험을 주는 책입니다. 내용이 아주 무겁지는 않으면서, 충분한 울림을 주죠. 읽을 때마다 가장 좋은 페이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위에 제가 보여드린 페이지 또한,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펼쳐 꼽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페이지가 눈에 들어오는가에 따라 그 시점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정작 그 말이 정말 필요할 때 와 닿는 정도는 평소와 매우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 어떤 부분에 가장 주목했는지 궁금했어요. 형태소에게도 당연히 그것을 물었습니다. 형태소가 꼽은 문장 혹은 그림들은 아래와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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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과 글귀는 어느 부분이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좋은 글귀와 그림이 서로 다른 부분에 있다면 따로 설명해주세요!)
🎉 : 가장 좋았던 글귀는 두더지가 “우린 늘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겐 지금 바로 친절할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3월 한 달 동안 스치듯이 이 책을 잠깐 펼쳐서 훑다가 덮어두고, 또 잊고 살다가 잠깐 꺼내서 보고를 반복했다. 순간순간 내가 떠올리는 기억과 감정에 따라 책의 글귀와 그림들은 마치 전부 처음 읽는 책인 것처럼 다르게 다가왔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아빠한테는 엄마가 진짜 귀한 사람이거든? 성가셔하지 마. 답답해하지 마. 짜증 내지 말고, 다정해 줘.” 드라마의 주제는 부모 세대의 헌신과 가족애를 향한 헌사였다. 그 장면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리액션 영상’이 유튜브에 쏟아졌다. 댓글을 채운 드라마를 향한 찬사를 읽다 보면 전국민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타인을 향한 무조건적 헌신과 선한 마음, 친절과 다정함으로 무장한 인물이 활약하는 픽션이 많다.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깨닫거나 다짐하면서, 혹은 자신의 마음 속에 텅 비어 있었던 부분을 발견하면서 공감을 느끼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 그걸로 끝인 사람들이 많다. 공감도 가고 울기도 울었지만 예컨대 그냥 드라마 한 편 본 것이고 삶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음 속에 잠깐 일어났던 변화는 드라마는 판타지이고 생활은 현실이라는 논리에 덮여 금새 온데 간데 없어질 것이다. 또 우리는 어김없이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것들, 다시 말해 가장 당연하고 가장 익숙한 것들을 가장 권태롭고 퉁명스럽게 대할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하며 책을 또 펼쳤다.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두더지의 말. 이번엔 그 말이 자꾸 눈에 밟혔다. 부모도 부모이고 가족도 가족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존재, 가까운 존재, 당연한 존재에게 불친절하다면, 내게 가장 가깝고 가장 익숙한 존재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외부 세계는 연애편지고 내 내면은 낙서장이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느낀 아름다움은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왔다.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가치들이 정작 내 마음 속으로만 들어오면 허상이 됐다. 내면에 온기가 돋으려고만 하면 이런 말들이 바람처럼 불어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다 허울 좋은 이상론일 뿐이지. 내가 겪어본 인생은 그런 온도가 아니었어. 현실을 보면 달라. 그 바람들이 자꾸만 온기를 눌러 지웠다.
사람들은 따스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아름답다고도 생각하지만 진짜라고는 못 믿는다. 다정한 이야기를 보고 펑펑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그 눈물을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쓰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가장 험하게 다루어 왔다. 친절의 가치를 믿는다면, 나는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야.”라고 말하는 두더지의 말을 이번엔 진정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여우, 소년, 두더지가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이 가장 좋다. 그 밑에 “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라고 적혀 있다. 확실히 이 순박하고 섬세한 그림들이 아니었다면 내게 이 책의 텍스트 또한 이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풍경과 언어가 만나 이 책이 건네는 것은 하나의 세계 같다. 책 뒷표지에 실린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추천사처럼, 그 세계는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곳이다.
🌵 : “때로는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기만 해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 같아.” 말이 말했습니다.
이 대화와 함께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장 좋았다.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멈춰있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 같다는 말.
김화진 작가의 『동경』이라는 소설에서 ‘책점’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자주 읽는 책이 꽂힌 책장으로 가서 눈을 감고 한 권을 골라 고민을 떠올리고 무작위로 책을 펼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읽어. 그게 너의 운세야’라는 내용인데.. 지금 내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로 책점을 본다면 이 페이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필요한 말 같아서.
🍉 : "어떤 땐 나보다 네가 나를 더 믿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소년이 말했어요.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믿고 아껴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다른 사람 일에는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보내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질책과 타박만 하기 일쑤다. 너 자신을 아끼고 믿어줘 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너도 금세 날 따라잡을 거야.”라는 말로 재치있게 표현해준 게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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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서서 묵묵한 지지를 보내는 말이 느껴져 마음이 포근해졌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보다 마르지 않는 마음으로 보내는 응원은 큰 힘이 된다.
📌 : 짧은 에피소드이지만 아포리즘을 담아낸 이야기들로 구성된 책이라 사진 찍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첫 인사가 기억에 남는데, “당신은 책을 첫 장부터 읽는군요. 인상적입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상관없는 책의 구조, 딱딱하게 혹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편안해지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는 설계가 느껴졌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정말 중간부터 펼쳐서 봤다. 그런 독서는 처음 해 보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여기저기 펼쳐보며 만난 장면 중 가장 마음에 든 건 “우린 늘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겐 지금 바로 친절할 수가 있어.”라는 문장이다. 나는 늘 기다리는 것 같다. 나를 비판하고 낮추면서 달려가다가 언젠가 만날 귀인을. 그 귀인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하지만 인생의 언제쯤에나 그런 인물이 올 것이며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가? 그래서 이 문장이 더 깊게 다가온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친절할 수 있구나. 그러다 보면 나한테도 이 상냥한 동물들(소년 포함이다) 같은 편안함이 오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다만 선택의 연속이니까, 나는 내 자신을 위한 친절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문장이다.
이 책은 그림도 무척 중요한 요소다. 여우가 두더지를 꺼내주는 장면, 말과 친구들이 우정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글 없이 진행된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 아닐까?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나오면 납작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 말과의 말 없는 시간 속에서 사랑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쌓인 우정 속에서 말은 위로(어쩌면 자신을 위한)를 건넨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어느 눈 오는 날 말은 자신의 날개를 펼친다. 우정 속에서 내가 단단해지는 시간을 겪은 자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장면의 그림이 좋았다. 아마 말 없는 여우 또한 언젠가 그렇게 날아오를 것이고, 집에 당도한 소년도 그럴 것이다. 자유로워졌으니까. 그리고 책은 마지막에 끝이라는 말 대신 우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보라고 반복하면서, 책을 본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전한다. 구조적으로 예쁘게 만들어진 책이다.
🕯️ :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유야.”
해가 지날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짐과 동시에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넓어진다. 그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난다. 나의 자유로움은 자기 존재를 점점 확실히 하는 중이다. 덕분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미래를 점칠 수 없단 사실을 알면서도 무수한 질문으로 선택을 미룬다. 그러다 문득 누가 나 대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무턱대고 흰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컬러링 북에 색을 채워나가는 일이 더 쉽다. 다른 이의 접근이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책은 이 문장으로써 자유에 대한 다양한 접근 중 하나를 보여준다. 미리 그려져 있는 컬러링 북의 그림처럼, 문장의 접근법이 내게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었다. 무겁게만 다가왔던 자유가 이 문장과 담백하게 그려진 흑백 그림을 통과하면서 조금 가벼워진다.
☔ : “가장 심각한 착각은.” “삶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해가 지날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두려운 일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임을 느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누군가는 비웃을 만한 작은 도전들 앞에서 아직도 내겐 ‘멈춤’이 필요하다. 무엇이 두려움을 가져오는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내 두려움의 원인을 콕 찔러준 글귀이다. 흠 없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로 놓쳤던 더 멋진 그림들이 아쉽다. 완벽한 출발도, 완벽한 삶도 없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강아지 발자국이 완성한 해당 페이지의 그림처럼.
🍥 : “조심해.떨 ...”“... 어져.”
두더지가 풍덩 빠지는 부분 … 귀여워… 너무 귀여워요
“어떤 이유로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약한 모습이 아니야. 그만큼 강하다는 거야.”
눈물이 많은 편이었어서. 눈물 많은 나를 미워하곤 했어요. 약점과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던 것 같아요. 우는 내가 싫어서 나를 미워하고 함부로 하던 시간들도 기억나요. 중학교 선생님께서 써주셨던 편지 내용이 떠올랐어요. 그 당시에는 그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 동화의 이 부분과 비슷한 거 같아요 “눈물과 웃음이 많은 건 정말 축복과 같은 거야. 너는 남들보다 배로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공감하며 살 수 있을 거야.” 어른이 된 지금은 눈물이 없어졌어요. 이젠 울기 어려운 거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는 우는 게 싫지 않아요. 우는 나도, 웃는 나도 전부 사랑할 수 있어요. 다행이죠?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하는 것”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용기를 위해서는 시간과 돈도 필요해요.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고, 나누는 것이야 말로 정말 큰 성공이라는 생각을 해요
🎅 : "친절함은 조용히 모든 것을 압도해"
‘솔직함’을 포장 삼아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이들과 멀리한다.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선 약간의 ‘가식’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의 다정함은 누군가의 친절로 치환되고 결국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사소한 걸음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가 없다고 속편한 핑계를 댈 때마다 형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친절한 사람이다’라는, 내내 의심했던 말을 한 번 더 믿기로 합니다.”라는 누군가의 편지 문구가 떠오른다. 성공을 위해 냉소를 강요받는 이 세상에서 살가움은 가장 큰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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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들이 질투하는 바람에 날기를 그만둔 ‘말’은 결국 날개를 펼친다. 사람의 진가는 녹이 슬지 않는다. 우리 곁에는 수많은 ‘말’이 있다,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도 ‘소년’, ‘두더지’, ‘여우’와 같이 그 자체의 모습을 알아주는 친구가 나타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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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렇지만, 특히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다루는 형태소 구성원 각자의 방식은 개개인의 개성이 돋보였어요. 모두가 인생과 그것을 관통하는 마음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재밌는 접근법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형태소 페이퍼 15호에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소년, 두더지, 여우, 말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책에 나오는 네 명의 친구는 소중한 우정을 나누지만 각자가 가진 두려움이나 관점이 조금씩 달라요. 그렇기에, 그 각각의 캐릭터에 집중해보면 이 책 가지고 더 깊게 사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생각을 약간 변형해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형태소에게 남겼습니다. 이번에도 형태소의 답변까지 함께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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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더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기보단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다. “처음 시도해서 잘 안 되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말을 좋아하는 두더지에게 어떻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있겠어! 두더지와 대화를 나누면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후회를 곱씹거나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고민을 끌어와 힘들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두더지 짱
🎉 : 한 친구를 꼽는다면 나는 여우를 가장 아끼게 된다. 여우는 의심이 많았으며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 같았다. 소년과 두더지를 노리다 덫에 걸렸고, 덫만 없었으면 널 죽였을 것이라며 두더지를 위협한다. 그런데도 두더지는 덫을 끊어 자신을 살렸고, 후에 두더지에 강에 빠지자 여우는 말없이 두더지를 구한다.
여우는 무엇을 느껴서 그랬는지 밝히지 않는다. 소년, 두더지, 말은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내지만 여우는 아주 과묵하다. ‘얘기할 만큼 흥미로운 게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여우는 함께 나아가는 이유를 “너희 셋”이라고 밝혔다.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도 하지만 솔직하고, 묵묵히 변화하고 회복하는 구도자 여우에게 더 정이 갔다. 네 친구는 서로 소통하기도 하지만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많은 의미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것을 가장 잘 수행하는 것이 여우인 것 같다. 여우가 밝고 따뜻한, 상처 없는 여우로 변신할 순 없겠지만 그저 거기에 있어주는 그들의 여우가 소년과 두더지와 말에게는 이미 너무나 소중할 것이다.
어쩌면 여우에게서 나는 나의 상처, 나의 경계심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우처럼 묵묵히 온기를 쫓으니 회복되는 것이 있음에 공감한다. 세상의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도움을 요청하면 손길을 내어주는 곳이 맞다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을 실현하려면 나부터 불신을 넘어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호기심이든, 존경심이든, 빛이 향하는 길을 함께 걸어보면서.
🍉 : 두더지!
때로는 엉뚱한 질문을 하면서도 소년을 위해 케이크를 가져오는 두더지를 곁에 두고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다. 소년을 위해 가져온 케이크를 먹어버리는 것까지 사랑스러운 친구다.
두더지를 만나게 된다면 맛있는 케이크집에 데려가서 종알종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건 두더지라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을 말한 인물인 것도 호감 요인이긴 하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두더지가 케이크 덕후라는 사실. 나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 스몰토크를 잘 못하는 편이라 더 그렇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보단 그 사람의 행동을 추동하는 매커니즘이 궁금하고, 깊은 취향을 표현해주는 답이 좋다.
“난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를 깨달았어.”
“케이크 때문에?”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두더지는 케이크 때문이냐고 묻는다. 아니, 믿는다. 두더지한테 케이크는 사랑이고 살아갈 힘이니까. 자기만의 농담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이 끌린다. 그 농담에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박힌 삶의 파편을 받을수록 그 사람을 조금씩 확실하게 사랑하게 된다.
🕯️ : 말과 잘 통할 것 같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건넸을 때, 내가 그것에 매긴 가치를 상대가 알아주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다.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사건 역시 기쁘다. 친구를 비롯한 여러 관계는 그 기쁨이 여전할 때 지속된다. 말은 이야기를 잘하기도 하고 잘 듣기도 한다. 도움을 잘 요청하기도 하고 잘 도와주기도 한다. 주고받는 데 익숙해 보인다. 그러니 내가 중시하는 기쁨에도 동의하리라 생각했다.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잘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 두더지
케이크 한 조각에 위로 받는 작은 두더지에게 시선이 간다. 집착의 대상이 거대한 목표, 멋진 꿈이 아니라 케이크라는 단순함이 좋다.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은 뒤,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 이 귀여운 단순함이 실은 ‘자신에게 친절한’ 삶의 원형이지 않을까.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라 말하는 두더지와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으로 친절함에 집착해왔던 내게 건강한 친절함을 알려줄 것만 같다. 나를 향한 친절부터 시작하는 나를 돌보는 방법. 소박한 행복을 느끼고 솔직하게 사랑을 나누는 방법. 주저함 없이 다가가고, 질문하며, 사랑을 나누는 두더지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 : 말이랑 잘 통할 거 같아요.
왜냐면 제가 두더지 같거든요. 따뜻하고,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말,, 진중한 말,, 짱
그렇지만 제 주변에는 두더지들이 한 바가지에요. 두더지들 속에서는 왜인지 두더지인 제가 말 탈을 쓰고 두더지 왕이 된답니다. 어쩌면, 제가 가지고 싶어하는 부분을 가진 친구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아요. 멋쥐다. 진중 말.
🎅 : 두더지.
원체 생각이 많다. 고등학생 때는 3년 내내 걱정 인형을 베개 밑에 두었다. 살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 따윈 없었다. 잠시 경로를 벗어나긴 했지만, 선로가 보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래가 기대되는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언젠가 나의 기차가 탈선할 그때 ‘두더지’가 내 곁에 있으면 한다. 두더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고, 동시에 세상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내 걱정을 한 떨기 깃털로 만들어 줄 그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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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여러분에게도, 형태소에게도, 저에게도 그저 이 페이퍼를 비롯한 하나의 책, 한 번의 스쳐가는 생각 쯤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 이야기에는 분명한 치료와 회복의 힘이 있습니다. 이 책 안에 담긴 아름다운 주제가 여러분의 삶의 주제가 되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페이퍼 첫머리의 생각을 다시 불러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책과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똑같은 것을 마주하고도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하나의 책도 그저 하루의 일상도 얼마든지 특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 덕분이기도 하고, 분명 그 안에 나와 모두가 지켜온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는 덕분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저는 우리가 책을 읽고, 일상을 살고자 하면 책과 일상은 거기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생각하기도 했어요.
페이퍼가 마무리 되었으니 저 역시 이 책을 다시 책장 안으로 돌려 놓게 되었네요. 하지만 추운 눈밭 속에서 온기를 찾았던 네 친구의 이야기는 불현듯 다시 꺼내들 수 있는 페이지처럼, 혹은 희미하게만 남더라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 하나의 온기로, 늘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지침으로 저와 여러분의 기억 어딘가에 스며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통해 오랜만에 순수하고 맑은 이야기의 즐거움을 떠올리신 분들을 위해, 이번에는 형태소 PICK으로 추천하는 ‘동화’를 꼽아 왔습니다. 아마 이미 읽으신 유명 동화들도 있을 텐데요. 저는 옛날에 읽었던 동화를 다시 회상하면서, 과연 나는 그 동화들에서 일깨워주었던 가치들을 잘 지켜 나가는 어른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태소 PICK도 살펴 보시고, 이번 기회에 여러분께서도 추억의 동화 한 두 편을 다시 읽으러 다시 책장 앞으로 향해 보시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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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심스 태백의 그림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고도 할 수 있다. 낡은 오버코트를 단추로 만드는 이야기!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채와 코트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모든 과정이 무척 재미있다.
🎉 : 『지각대장 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간다. 존은 지각이 잦다. 존에게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존을 믿을 수 있는가? 모두가 한 번쯤 그 표지를 보았을 것 같은 유명 동화.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꾸짖는 동화다. 작가인 존 버닝햄은 교육제도에 부적응해 아홉번의 전학을 겪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였으며 국제평화봉사단의 단원이었다. 그가 어렴풋이 비꼬는 권위주의가 재밌다.
🍉 : 『Harold and the purple crayon』
아직 잘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아가가 크레용을 들고 모험을 떠난다. 아가가 펼쳐내는 상상의 나래에 함께 하다보면 금방이라도 긴 잠에 푹 들 수 있을 것 같다.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으니 마음이 끌린다면 Harold와 여행을 떠나보시길!
https://youtu.be/G2QtFXHyRpc?feature=shared
📌 :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
금발의 소녀 골디락스는 숲속에서 한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똑똑- 두드려 보지만 아무도 없다. 오두막에는 크림 포리지 세 그릇, 각기 다른 소파 세 개, 침대 세 개가 기다리고 있다. 골디락스에게 딱 맞는 건 뭘까? 또 이 세 가지 물건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 : 『천둥 꼬마 선녀 번개 꼬마 선녀』
말아 올린 긴 머리칼, 질질 끌리는 날개옷의 치마, 두 꼬마 선녀에게는 모든 게 불편하다. 견디다 못한 두 선녀는 결국 발가벗고 세상 구경에 나선다. 둘의 일탈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짙은 먹구름이 볕을 가릴 때, 이 책을 꺼내보자.
☔ : 『돼지책』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던 엄마가 사라졌다! 피곳 씨와 아이들은 조금씩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함께사는 방법을 유쾌하게 알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 『사과가 쿵!』
진짜 아기 시절(?)에 읽었던 책인데 쿵! 떨어진 사과를 동물 친구들이 나눠 먹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지금이랑 취향이 똑같네요 ㅎ. 의성어랑 의태어가 반복되는 걸 즐거워했던 거 같아요.
🎅 : 『큰 개와 작은 개의 항해』
허무맹랑한 큰 개와 작은 개의 항해. 용감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큰 개의 곁에는 작은 개가 있다. 보트틀 만들고 구명조끼를 입고 닻을 내리고 고래를 만든다. 해가 지면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며 잠자리에 든다.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그들의 항해에 함께하고 싶었다. 꿈 속의 나는 망망대해를 건너며 바람을 맞는다. 언제나 내 독서기록장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들의 도전. 사랑스러운 그들의 여정에 동반할 그날을 기다리며 난 여전히 미소를 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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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소의 열여섯 번째 페이퍼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태소 페이퍼>는
잠깐 쉬어간 후, 6월 둘째주, 넷째주 목요일에 다시 찾아옵니다!
🙌6월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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