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장면이나 문장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 : “중요한 건 여러 번의 계절의 나는 동안 지우가 용식을 깊이 봐온 것만큼 용식 또한 지우를 계속 지켜봤음을 지우에게 알려주는 거였다. 서로 시선이 꼭 만나지 않아도, 때론 전혀 의식 못해도, 서로를 보는 눈빛이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고요히 거기 있었는지 보여주는 거였다.” (p.132) / “그렇게 용식이 스스로 대성당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막아주는 모습을 그려봐야지’”(p.133)
“거대한 구름이 천천히 해를 가리며 지나갔다.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워졌다. 그 순간 소리는 엄마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고.” (p.140)
🌵 : “난 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한 이야기면 더.”
“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지우와 소리가 ‘이야기가 좋은 이유’에 대해 나누는 장면. 이야기에 끝이 있어서 좋다는 지우의 대답과 시작이 있어서 좋다는 소리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지우의 대답에 더 공감 갔다.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떻게든 매듭지어진다는 점이 좋다. 저 두 대답 외에 이야기가 좋은 이유를 말해보자면, 어떤 종류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형태로만 전달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좋다. 이야기의 형태로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기에 계속해서 읽고 쓰고 듣고 보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그리고 더불어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관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함께 찾을 수 있는 관계..
🎉 :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지우는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임을 깨달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시련을 딛고 세상을 구원하는 주인공. 그런 ‘특별함’에서부터 벗어나면서 김애란의 위로와 성장은 ‘특별함’에 도달한다. 가족은 모든 인간 내면의 토대이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안식처가 된다.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 아니,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곳. 하지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세 주인공은 자신들이 자라났고 뿌리내리고 있었던 토양을 잃고 비틀거린다. 이 이야기에서 영웅적인 인물은 없다.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도망치며, 때로 겁쟁이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채운이와 소리, 그리고 지우가 바로 내 곁에서 숨쉬는 것만 같았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 그리하여, 그래야만 하는, ‘접속사’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선택이자 마음을 짊어지는 것. 그저 천천히,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속도로 꿈틀대며 천천히 우리의 고향과 작별하는 것. 서로에 대해, 서로의 거짓말과 비밀에 대해 생각하는 것.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 살아냄의 미학은 바로 그런 대단치 않은 틈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 : 채운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소리와 채운이 대화를 주고받은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와 더불어, 소리가 채운이에게 아버지가 곧 회복될 거라는 거짓말을 한 장면이 겹쳐져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채운이가 아버지를 칼로 찔렀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덮으려고 한 어머니의 거짓말. 더 나아가서, 채운이의 슬픈 눈을 보고는 채운의 아버지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한 소리의 거짓말이 겹쳐져서 아이러니한 현실이 구성되는 것이 오묘했기 때문이다. 사실과 거짓이 뒤엉킨 채 조합된 현실 자체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채운의 어머니가 채운에게 쓴 편지 내용 중에서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다.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이었다. 봉사활동을 온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상담 교육 때 한 말이자 이제 채운의 어머니가 채운에게 하는 말로 변주되는 부분이었다. 대개 가족 내에서의 불화를 겪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인데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이더라도 무조건적인 책임과 감수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은 ‘그래도 가족인데...’로 시작되는 안온한 무지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라, 정신의학과 선생님과 채운의 어머니가 한 말이지 않을까.
🕯 : “극적인 탈출이 아닌 아주 잘고 꾸준하게 일어난 구원. 상대가 나를 살린 줄도 모른 채 살아낸 날들.”
행복보다 불행이 더 큰 삶을 짊어진 소설 속 아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를 명확히 드러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 삶은 자잘한 일로 구성된다. 지루해 보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 아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랬다. 자잘한 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우리 자신이 원하는 궤도 안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우리는 가끔 무지 기쁜 일을 바란다. 적어도 며칠 간은 웃기만 할 수 있게 말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아주 안 좋은 일을 기다리기도 한다. 왜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불쾌한 감정들을 죄다 정당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잘고 꾸준’한 사건의 존재마저도 알지 못했기에 이런 바람은 머릿속에서 상상이란 이름으로 몸을 불린다. 그러나 작디작은 구원이 저 문장으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를 알게 된 지금, 극적인 일이 없는 무료한 나날을 조금이나마 소중히 여길 수 있지 않을까.
🍅 :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각자의 A와 B를 두고 과연 내가 이래도 되는가? 하고 고뇌에 빠지는 장면이었어요. 손을 잡는 게 맞는지 아닌지, 사실을 알리는 게 맞는지 아닌지, 손을 내밀어도 되는지 아닌지 같은 상황이죠. 대부분의 경우 그 기준은 주관적이죠. 그래서 상념에 빠지기 좋은 상황이 되고, 각자만의 선이 생기기 좋은 과정이죠. 시작은 했으나 아직 끝은 멀고 먼 느낌. 그런 장면들이 계속 나와서 흥미로웠어요. 저는 평소에 뭐가 맞고 틀린지 길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